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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장기/배낭여행(2018-2019)

[일기] 2018.11.25. 비 많이 오고, 농협카드 결제 오류, 사오윤과의 점심

by 해바라기 씨 2021. 6. 20.

 비는 계속됐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일찍 일어나 눈 뜨자마자 남동생한테 어제 부탁했던 카드결제를 해봤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시도도 안 했단다. 7시간 동안 뭘 한 건지. 짜증이 났지만 어차피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내버려 두었다.

 

 주방으로 가니 샤오윤이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바로 컴퓨터를 켰다. 로마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하기 위해서, 빨리 루마니아로 넘어가기 위해서... 이번엔 하나카드를 들고 시도했다. 국제학생증용으로 만들었던 하나은행 체크카드는 마스터카드 가맹이었다. 결제창을 켜고 또 무슨 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설치 자체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음 버튼만 연달아 클릭했다. 어쨌든 진행은 되었다. 일반 결제 비밀번호도 새로 만들고, 입력하고 나니 ARS 확인을 한다 하여 또 스마트폰 USIM을 바꿔야 했다.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PASS어플과 ARS 전화 인증까지 하고 나자 드디어 결제가 완료되었다. 정말 다행이었지만, 동시에 짜증이 났다. 왜 이렇게까지 하게 만드는 거지? 오히려 몇 번의 경고창을 무시해야 설치를 하고 결제를 할 수 있는 것이 보안상 더 문제가 있어 보였다. 카드번호만 입력하면 니들이 알아서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너무 피곤해져서 샤오윤에게 하소연했다. 대만에서도 결제할 때 이것저것 띄워서 짜증나게 한단다.

 

 난 계속 주방에서 뻐기며 비를 좀 쳐다보다가 샤오윤과 함께 점심을 먹으로 나가기로 약속했다. 마침 샌야가 자기도 현지 사람에게 들은 식당이 있다며 갈 곳을 알려 주었다. 냉큼 받아 적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12시가 넘어도 장대비는 계속되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비가 오겠다 싶었고 우리는 그래서 숙소를 나섰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다음 행선지를 정하기로 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식당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비가 정말 많이 왔고 바닥은 웅덩이로 가득해서 체감상 더 걸린 것 같았다. 발이 슬슬 젖어갔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사람이 반쯤 차 있었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나는 봉골레, 샤오윤은 뭔지 모를 파스타를 주문했고 와인은 작은 병으로 하나. 아란치니도 각각 하나씩 주문했다. 하나를 시켜 나눠 먹을까 하다가 조금 쪼잔한 것 같아(아란치니 크기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내가 살테니 각자 먹자고 말했다.

 

 

 좋았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사실 봉골레는 그저 그랬지만 얘기를 하느라 파스타를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었다. 이런 저런 일, 하는 일, 전공, 중국, 대만, 투표, 정치... 루마니아에 관해서도 이것저것 물었다. 거의 앉은자리에서 3시간은 떠들지 않았나 싶다. 특히 각자의 견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만에서 최근 선거가 있었다는데, 독립과는 거리가 먼 정치인이 힘을 얻었다는 얘기를 할 때의 샤오윤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본식이 끝나고 케이크와 커피까지 마시며 시간을 채우고 나서 우리는 숙소에서 한 잔 더 하자며 마트에서 햄과 치즈, 과자를 사고 돌아갔다. 그런데 막상 숙소로 돌아가니 너무 배가 불렀고 지쳐서 뻗어 버렸다. 최대한 쾌적한 상태로 뻗기 위해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샤오윤의 침대가 바뀌어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벌레에 물린 듯 부어오르는 증상이 엠마 뿐만 아니라 같은 침대를 쓴 샤오윤한테도 생겨서, 숙소 주인인 파비오가 침대를 새로 사 바꿨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내 위에 있던 침대가 사라져서 좀 이상했다. 이불도 바뀌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축축한 느낌이 들고 싸늘해 좋지 않았다. 바로 내 위 침대였는데, 혹시 그 벌레가 나한테 오는 건 아닌가 몇 초 걱정했지만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오늘은 공짜 피자 파티가 있는 날이라 먹겠다고 말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지쳐서 식당을 나왔다. 배도 안 고픈데 굳이 먹고 싶지 않았다. 와인도 잔으로 한 잔 마셨다. 새롭게 체크인한 미국인들이 잔뜩 와 있었다. 별로 나랑 맞는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어울리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샤오윤을 포함한 대여섯 명이서 떠들다 열 시쯤 방으로 들어갔는데, 생각해 보니 샤오윤과 같이 산 안주를 먹지도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빠르게 떠나게 되었다. 여행은 항상 그렇다. 어쩌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