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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장기/배낭여행(2018-2019)

[일기] 2018.11.22. 첫 로마, 샌야와 엠마,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by 해바라기 씨 2020. 10. 9.

 

 밖이 조금 시끄럽다. 어제 로마에 왔다. k샌야, 엠마가 같은 방에 있었고, 방금 피트라는 남자가 체크인했다. 여기 호스텔 주인은 남자 형제인데 매우 친절하고 활발하다. 샌야는 영어를 아주 잘하는 러시아 사람이다. '샌야'라는 이름 앞에 "k"발음을 내야 하는데 러시아어는 생소해서 그런가 잘 되지 않는다. 샌야는 여행도 자주 다니는 것 같고, 중국에도 자주 갔다고 한다. 또 내 위 침대에 있는 중국 출신 아줌마는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동시통역 일을 30년 넘게 했다고 한다. 이제는 사부 밑에서 중국 의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란다. 한국의 한의사와는 다르게 대학에서 정규 과정을 거치거나 사부 밑에서 5년 이상 배우면 정식 중국의학 의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련 중이라고 한다. 사실 그래도 되는 걸까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멋져 보여서 좋아 보인다고 했다. 엠마는 실제로 매우 상냥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지난 밤은 좀 추웠다.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열 시가 다 되어 나왔다. 근처에서 걸어서 20분은 걸리는 성당에 가서 구경도 하고 조금 앉아 있다가, 콜로세움 쪽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금방이었다. 자꾸만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열두 시를 넘기자마자 식당으로 들어갔다. 못생긴 아저씨가 자꾸 얼굴을 들이대며 예쁘다고 말을 걸었다. 구라인 거 다 알아요..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남자의 이 사이에 낀 누런 니코틴이 보였다... 주문한 버섯피자도 맛이 없었다. 빵 부분은 맛있었는데, 버섯의 진액이 끈적거리고 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콜라에 위스키 샷을 넣어 준다는 제안을 거절했더니 그 남자가 나보고 미성년자냐고 물었다. 난 스물두 살이라고 대답했다. 이번엔 훨씬 어려 보인다며 오버를 떨었다. 아닌 거 나도 알아... 아무튼 밥 먹는데 매우 불편해져서 가게를 그냥 나왔다. 피자도 많이 남기고.

 

피자를 남기고 나왔는데도, 이 날씨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우 신이 난 상태
매우 신이 난 상태2
이날 찍은 사진들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콜로세움은, 예상도 못하고 마주쳤는데, 정말 멋졌다. 식당에서 그렇게 가깝게 있는 줄 몰랐다. 낮은 지대에 높은 콜로세움. 넓은 터에 깔린 유적들... 처음엔 콜로세움이 서 있는 그 곳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 안을 전부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바깥 풍경도 감상하는데, 그냥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콜로세움 입장권을 사는데도 꽤 서있었다. 나는 저기를 가 봐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뭣도 모르고 가서 줄을 섰다. 알고 보니 콜로세움에서 샀던 티켓으로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로마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알아보지 않고 온 것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곳은 관광객이라면, 특히 콜로세움을 가는 관광객이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간간히 안내문에 쓰인 영어를 읽어 가며 유적을 구경했다. 처음엔 그냥 마을터인가 싶었다. 볼수록 방어 요충지인 것 같기도 하고, 복합적인 공간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정확히 뭐 하던 곳인지 궁금해졌다. 영어를 읽을 수 있긴 해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데다, 설명을 읽을 때마다 한참을 서 있어야 하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몇 번만 안내를 열심히 읽고 그다음부터는 팔을 휘적거리며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해가 떠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기도 했다. 포로 로마노는 조금씩 유적과 유명지에 지루해진 와중에도 멋지다고 생각될 만큼 모든 공간이 좋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긴 시간을 보냈다. 콜로세움 안에서, 나와서 포로 로마노에서... 전부 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날씨는 얼마나 쾌청한지,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적들을 눈에 담아두었다. 

 

 

 

 

햇살이 정말이지 완벽

 

 

 

 

 

 

 

 

 다만, 자꾸 방광염에 걸린 것처럼 아랫배가 콕콕 찔리는 통증이 생겨 신경쓰였다. 물을 조금 마셨는데, 마시자마자 따끔거리는 것 같고. 그래서 걱정이 더 커지기 전에 오후 5시쯤 숙소로 돌아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로 가는 길에 피자 가게에 들러 조각피자와 아란치니를 사서 혼자 먹었다. 마치 서브웨이 매장처럼 간단하게 차려진 가게였는데, 피자를 무게를 달아 팔았다. 피자는 콜로세움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싸고 맛있었다. 내일부터는 저녁을 이렇게 먹고 일찍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로마에서 거의 매일 먹었던 피자

 

 

 

 

 글 쓸 곳이 주방밖에 없는데 여긴 사람이 항상 붐빈다. 시끄럽고... 다들 재밌게 떠드는데 아싸처럼 앉아 혼자 일기를 쓰는 게 조금 그랬다.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일기를 미뤄와서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오랜만에 좋은 하루였다. 돈도 덜 썼고, 잘 먹었고, 날씨도 본 것들도 사진도 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