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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장기/배낭여행(2018-2019)

2018.11.19~21

by 해바라기 씨 2020. 6. 2.

~기억을 더듬어서 2020년 06월 01일에 쓰는 2018년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의 이야기~

 

 

 

 

19일

 

아침에 숙소를 나섰다. 친절했던 숙소 직원분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혼자 나갔다. 다른 직원분과도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근무시간이 아니다 보니 볼 수 없었다. 같이 베르사유에 갔던 자매 언니들과 에펠탑에 같이 갔던 언니도 이미 숙소를 떠나고 없었다. 조금 쓸쓸한 마음으로 공항으로 갔다. 나비고 카드는 일주일이 지나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트램을 타고 한참을 서서 공항까지 갔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아침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당연한가?).. 앉을 수도 없고 가방을 내려놓을 수도, 고쳐맬 수도 없어 고역이었다.

 

 

민박에서 남겨준 쪽지

 

생각보다 공항에 일찍 도착했고, 문제 없이 수속을 끝냈다. 게이트로 입장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혹시 변수가 생길까 봐 일찍 다니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붕 뜰 때가 많다. 와이파이라도 제대로 되면 좋겠는데.. 느려 터지고 자꾸 끊긴다. 하는 수 없이 멍을 좀 때리다가 작은 라뒤레 가판대에서 마카롱을 한 개 더 샀다. 

 

내가 탔던 비행기는 아이글 아주르(Aigle Azur)라는 지역항공사다. 생긴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꽤 오래되었다. 현재는 파산해서 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내는 깔끔하고 승무원은 친절했다.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저가항공 스탠다드 같았다. 가격도 저렴했고. 파산했다니 안타깝다.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경량패딩 주머니와 물. 항상 저렇게 갖고다닌다.

 

그래도 보딩패스는 뽑아가야 했다... 귀찮아

 

그렇게 밀라노 공항에 도착했다. 밀라노 공항은 생각보다 컸다. 멀뚱멀뚱하게 있다가 일단 숙소까지 갈 방법을 찾아보았다. 기차로 먼저 간 다음,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다.

 

기차표를 사는 곳에 가서 안내직원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직원이 찰떡같이 가르쳐줘도 개떡같이 알아먹은 나는 공항 건물을 빠져나와 사람들을 따라 걷다가 주차장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십 분은 더 헤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떡하니 붙어 있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밀라노나 로마의 소매치기의 악명을 너무나도 많이 전해 들은 나머지 극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느 곳이든 처음 배낭을 메고 도착한 곳에서는 긴장하긴 하지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이 너무 어두컴컴하고 스산해서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짐을 짐칸에 두긴 하면서도 혹여 누가 가져갈까 와이어로 가방끈과 짐칸을 칭칭 감아 자물쇠로 잠갔다. 

 

 

 

기차보다는 지하철이 더 무서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숙소에 도착했다.

 

city center best hostel milano 

호스텔은 2박에 35유로였다. 평점이 매우 높아서 예약했는데, 그럴 만했다. 호스텔인걸 감안하고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숙소였다. 넓은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이 생겼다. 두 개 있는 화장실의 내부가 가정집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위치도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고, 일층에는 경찰서도 있어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다. 호스텔 직원은 중년 여성분이었는데, 매우 열정적인 목소리로 내게 근처 교통편과 명소를 지도와 함께 설명해 주었다. 따뜻하게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혼성 도미토리 방에서 묵었는데, 넓은 방에 침대를 고작 대여섯 개를 둔 데다(보통 호스텔은 꽉꽉 침대를 채워둔다) 천장도 높아서 굉장히 휑한 느낌이 들었다. 날씨가 춥고 웃풍은 어찌나 들어오는지.. 썰렁함이 컸지만 좁은 방에 여러 명을 욱여넣은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배낭이 충분히 들어가는 캐비닛도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입구가 멋져서 찍어보았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 엘리베이터는 다 이렇게 생겼더라. 신기해서 찍어봤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정처없이 걷다 보니 일본 음식점이 나왔다. 오랜만에 익숙한 음식이라 들어가서 맛있게 먹었다. 이번에도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했다. 그냥 줘...

 

움념념. 먹을만했다. 

밀라노에 있는 2박 3일 동안 정말 추웠다. 바르셀로나와 런던의 적당한 날씨에 젖어있다 보니 방한용품을 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해서 추위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20일

 

그래도 왔으니 움직여야지. 두오모 성당으로 갔다.

 

두오모 성당
아침에 가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기 전에 서양미술사에 대해 조금 읽어보았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종교사에 대해 알지도 못해서 명소에 오게 되더라도 감흥이 적다.

 

실내에 들어와도 너무 추워서 덜덜 떨었다. 근처에 쇼핑 거리가 있다고 해서 두오모 성당을 나와 그쪽으로 가보았는데, 사람만 몰려있고 내가 갈 곳은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다빈치 박물관에 들어가서(상설인 것 같았다) 전시를 관람했다. 지금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티켓 사진도 없다. 어지간히 추웠나 보다. 짐이 늘어나는 게 싫어 티켓을 모으지 않는 대신 사진을 꼭 찍어두는데,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관광지를 두 군데나 돌아보았는데도 점심 시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금방 지쳐버렸다. 낮이 되면 날씨도 좀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두 시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추워지는 것이었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사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가볍고 편한 여름 운동화를 신고 오는 바람에.. 슬슬 발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급하게 소품샵으로 들어가 모자를 사고, 내가 아는 음식을 팔 것 같은 식당에 들어가서 버거를 시켰다.

 

가격은 사악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서야 날이 조금 개기 시작했다. 밀라노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준비한 건 인사말뿐) 이곳으로 왔던 나는 숙소 주인이 설명해준 명소에 대해서는 이미 완벽히 까먹고 있었다. 종이 지도는 어디에 뒀는지 온데간데없고, 그저 구글 지도에 나와있는 별점이나 표시된 명소를 따라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여기가 어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 문을 통과하자(입장료를 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음) 광장과 건물이 몇 개 보였다. 그것들을 지나 개선문 같은 큰 문과 공원이 나왔다. 나는 이 공원 안을 무작정 걸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잡념들을 밀어냈다. 내가 이 장소에 대해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떻겠는가. 곧 까먹을 텐데...

 

 

내가 거기에서 무엇을 알았느냐는 이미 흩어져 없고 내가 무슨 감정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만 기억에 남는다.

 

 

사진의 문이 한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해가 지는 하늘을 구경했다.

밀라노는 생각보다 더 할 게 없었다. 물론 내가 잘 알아보지 않고 그저 파리를 떠날 목적으로 이곳에 건너온 탓이기도 했다. 겨울의 이탈리아..? 겨울의 유럽..? 그래도 난 겨울이 좋았다. 

 

해가 아주 질 때까지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을 구경했다. 거의 한 시간이 되도록 앉아 있으면서도 카페에 들어가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카페에 들어가는 것인데 무엇이 걱정이 되었는지.. 파리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그 뒤로 한동안 낯선 음식을 팔거나 관광객이 거의 없는 식당은 들어가기가 껄끄러웠다.

 

해가 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패션 거리를 걷고 식당을 찾아보면서, 저녁에 공짜 샐러드바가 열린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저렴하고 평점이 좋은 그런 식당들을 지나고, 쇼핑센터도 지나고, 주택가와 어두운 대로변도 지나고.. 배고파도 어디를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걷기만 했다. 그렇게 혼자 구석구석 걸어 다니는 게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나는 매우 의기소침해 있던 것 같다.

 

거의 세 시간 가까이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걷다가 결국 들어간 식당이 어제 갔던 일식당이었다. 동양 음식을 파는 곳이면 적어도 내가 얼굴 붉힐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어제 먹어보고 양이 적길래 사이드도 시켰다. 가라아게덮밥은 맛이 없었다. 그래도 쌀을 먹음에 만족했다.

 

숙소에 들어가니 두 명이 체크인해 있었다. 한 명은 이탈리아 사람이고 한 명은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각자 모국어만 할 줄 알고 나는 영어와 한국어밖에 못 해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색하게 웃음 짓고 친목을 마쳤다. 

 

밀라노에서는 2박 3일을 하지만 구경 다니는 건 하루뿐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착한 날은 저녁이라 걸어 다니기 무섭고,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로마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짐을 미리 싸고 일찍 잠을 청했다. 

 

 

 

 

 

 

21일

 

밀라노-로마 플릭스 버스

 

아주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나왔다.

 

경찰서 앞이지만 스산했다. 새벽이 제일 무서운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위험했던 것 같다. 나는 덜덜 떨면서 옷을 여미고 씩씩하게 ATM기에서 돈을 뽑았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에 갈 때쯤에야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는 터미널 내의 표지를 따라가면 되는데, 자꾸 구글 지도를 보다가 엄한 곳으로 마구 걸어갔다. 버스 주차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전혀 모르는 건물을 찍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면서 기운을 다 빼버렸다. 터미널 시설이 열악하여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고, 아침과 점심거리를 사기도 어려웠다. 겨우 매점을 찾아 형편없는 치즈 샌드위치를 하나 살 수 있었다. 이것으로 몇 시간을 버텨야 한다. 

 

추워 죽겠는데 플랫폼 번호는 헷갈리게 되어있고, 설상가상으로 버스가 지연되었다.

승객들은 익숙한지 아무도 미리 나와있지 않았다. 걱정이 가득한 나만 바깥에 나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덜덜 떨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어떤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말은 안 통하고.. 대충 프랑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게 자신의 종이 티켓을 봐달라며 건네주는데, 할머니 손이 꽁꽁 얼어 종이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서로 손을 붙잡고 비벼대며 손을 좀 녹였다. 나는 티켓을 읽어보고 이 플랫폼이 맞는데 내 버스보다 할머니 버스가 먼저 버스가 와야 된다고, 근데 지연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딱히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껄껄 웃으며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나 또한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손을 부여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탈 버스가 도착했고, 웃으며 인사하자 내가 탈 버스도 도착했다.

 

 

 

두 번째 플릭스 버스 탑승기이다. 전보다 좌석이 더 좁은 것 같이 느껴졌다. 밀라노에서 로마로 가는 버스이다.

 

어째 전보다 더 좁아

 

옆자리에 덩치가 큰 사람이 외투도 벗지 않고 쭉 앉아있는 바람에 더 좁게 느껴졌다. 전과는 다르게 버스에 빈 좌석 없이 꽉 채워 탑승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화장실 상태도 정말 엉망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겨우 (그나마)쾌적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버스 안의 공기가 사람들의 숨결로 가득 차서 역겨웠다. 아무도 창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없던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분명 아침에 출발하여 5시간이면 도착했어야 했는데, 출발 자체가 늦기도 하고 중간에 길이 엄청 막혀서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로마에 도착했다. 물론 겨울의 유럽은 4시-5시면 깜깜해진다. 해가 지고 나서의 이동은 피하고 싶어서 아침 버스로 예약한 건데...

 

 

 

로마 소매치기의 악명은 정말 하늘 끝까지 높아서 정말 긴장했다. 심지어 도착하니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비를 그냥 맞으면서 사람들을 따라 걷고 걸었다.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지하철로 가는 것 같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몇 번은 헤매도 역사로 갈 수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을 꺼내고 지하철표를 샀다. 유럽에서는 단위가 큰 지폐를 깨는 것이 항상 고역이었다. 어깨가 무너질 것 같은 통증을 애써 무시하면서 오줌 냄새가 나는 역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이미 가득 찬 객차에 몸을 밀어 넣었다. 째려보면 어쩔 건데. 

 

숙소가 지하철역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막상 내리니 그렇지 않았다. 네 개의 출구에서 자꾸 뱅글뱅글 돌며 헤맸다. 한 손에 들고 있는 우산이 짐스러웠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는데 날씨는 춥지 않아 속옷이 점점 땀에 젖었다. 한참을 돌다가 겨우 방향을 찾아 숙소로 갈 수 있었다.

 

dreaming rome이라는 호스텔이다. 호스텔 얘기는 앞으로 풀도록 하겠다.

 

 

 

 

완전 녹초가 되어 가방을 내려놓고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이제 안전한 곳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배가 고파왔다. 다시 숙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식당을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보는데 너무 크거나, 늦게 오픈하거나, 비싸거나.. 가기 껄끄러운 여러 요소들이 눈에 보였다. 근처 작은 슈퍼마켓에서 과자나 요거트같은 간식류를 사고 나니 태국 음식점이 눈에 보였다. 결국 또.. 아시안 음식점에 가고 말았다.

 

그래도이제 밥 먹으니까 기분 좋아졌음

 

 

맛있었다

잘 도착한 기념으로 맥주도 한 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