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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장기/배낭여행(2018-2019)

[일기] 2018.11.11 ~내일이올걸아는데나는핸드폰을놓지못해~

by 해바라기 씨 2020. 5. 26.

너무 추웠던 새벽

 

우렁찬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무슨 쓰레기차 소리 같았는데 새벽 내내 나는 것이다. 공기가 차가웠다. 알고 보니 소리는 물소리였고, 추운 건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였다. 환장한다... 그래도 바르셀로나에서보다는 푹 잤다. 이상하게. 아마 어두워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귀마개를 어디다 뒀던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다.

느지막이 나와서 아침을 먹었다. 1파운드에 이 정도면 좋긴 하지만 달걀을 바라는 건 무리겠지?ㅎ 신선한 채소가 먹고 싶다.

빅벤이 있는 웨스트민스터로 갔다.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내리자 경찰이 출구 하나를 빼고 모두를 막고 있었다. 되게 무서운 목소리로 저쪽 출구로만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테러라도 난 줄 알았다. 나가라는 대로 나가자, 사람들이 붐볐고 나는 다른 이들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뒤로는 빅벤이 보이고, 옆으로는 템즈 강이 보이는 다리 한복판에 택시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고, 'poppy cab'라는 사인이 붙어 있는 택시들이었다. 분위기는 무섭지 않았다. 몇 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꽃 배지 같은 걸 팔고 있었다. 기념일 같아 보였다. 조금 더 들어가서 다리 옆에 서서 템즈 강의 국회의사당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추워도 해가 좋았다. 뭔가 경건한 분위기였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옆에 나이 든 여자분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오늘이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고, 마침 100주년이며, 무덤에서 자라나는 poppy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저기 보이는 택시들은 거기에 기부를 한 택시들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전장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날이라고. 저기 깃발을 잔뜩 꽂고 템즈 강 한가운데를 지나는 배가 여왕이 타고 있는 배라고 했다. 그래서 통제를 했구나. 오늘은 Remembrance Sunday였다. 여왕의 배를 따라 다른 배들도 나아가고, 경건한 노래와 오페라 가수의 라이브도 나왔다. 강물에 빨간 꽃잎들도 잔잔히 떠내려갔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버스 노선이 뒤죽박죽이었구나 싶었다. 나는 주변에서 계속 걷다가 사원으로 갔는데 거기도 행사로 바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둔 것 같아서 다른 버스를 타러 또 한참을 헤맸다. 버스를 타도 차가 엄청 막혀서 짜증이 났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신경이 곤두섰다. 오늘은 버스들이 뱅뱅 돌아가서 더 그랬다.

 

내려널 갤러리에 가기 전에 식당도 들어가고 화장실을 쓰려 했는데, 현금을 20파운드도 안 가지고 있어서 ATM 기기를 찾아다녔다. 지하로 들어가도 없어서 가게에 물어봤는데도 말해준 곳에 기기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냥 카드를 쓸 생각으로 태국 음식점에 들어갔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맛도 그저 그런데 더럽게 비쌌다. 서비스차지가 12.5%나 되었다. 양아치들...

 

내셔널 갤러리는... 감흥이 없었다. 거기 있는 그림들은 이들 것이 아니다.

복도에서 발냄새가 난다. 화장실에 창문도 없고 환기도 안 되고... 방은 그나마 나은데 냄새가 아예 안 나는 건 아니고, 계속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 엄청 춥다. 씻고 양말을 빨고 라운지로 내려왔다. 여긴 쾌적하고 천장도 높으며 조명도 좋은 데다, 안 춥다. 분위기가 좋았다. 아무도 말은 안 하지만.

숙소 도착후 일찍 씻고 라운지에서 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