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8.11.08 지로나, 냄비밥과 볶음밥
오늘은 지로나에 가려고 어제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기보다는 일찍 일어나려고도 안 했지만, 눈 뜬 시간은 6시 조금 전이었다. 아침밥을 산더미처럼 먹고 9시 조금 전에 나왔다. 끝나기 직전인 Hola BCN을 찍고 Passeig de Gracia로 갔다. 렌페를 타는 곳은 찾아가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많이 걸었다.
매표소 줄이 그렇게 길지는 않는데 느려터져서 기계를 사용하려 했더니 50유로짜리 지폐는 쓸 수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왕복 티켓을 샀다. 그동안 기차를 두 대는 놓친 것 같았다. 플랫폼을 잘못 찾아서 조금 헤매다가 제대로 된 곳에서 기다리는데, 그쪽으로 가는 기차가 별로 없는지 거의 한 시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탔다. 지나치는 기차들 중에서는 차체 전체가 지저분한 그래피티(라고 쓰고 낙서라 읽고 싶은)로 칠해져서 창문도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아니 이렇게 비싼 값을 받고 뭐 하는지... 내가 탄 기차의 시트는 더럽기도 했다. 객실에 약간 불쾌한 냄새도 나는 듯했다.
내가 탄 기차는 아니었는데 너무 놀래서 찍은 사진
30분이면 도착하는 줄 알았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중간에 푹 잤다.
되게 가난한 동네처럼 보였다. 지로나는.
중세 성당과 마을, 벽이 남아있다면 그곳은 딱 일부분만 간직하고 있어서 벽 주위를 조금만 벗어나면 중세의 느낌은 없었다. 성당은 아름다웠다. 주변 건물도 예쁘고, 큰 벽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컸다. 근데 그게 전부였다. 아주 잠깐의 감상이 끝나자 피곤해졌다. 물가도 싸지도 않고, 곳곳이 너무 한산하다 보니 어딜 어떻게 다녀야 될지 모르게 어수선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가다가 파이 같은 걸 하나 사 먹고 노천카페에서 크로켓과 크로나를 먹었다. 냉동 맛이었다. 알딸딸해진 상태에서 예상보다 일찍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기차에서 취기로 잠을 잤다.
한 정거장을 가려고 돈을 내고 싶지도 않고, 이미 기차로 22.5유로나 써버렸기 때문에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구글이 또 개떡같이 일을 하는 바람에 2블록 정도는 같은 길을 돌아갔다. 가는 길에 빨래방 위치도 봐 두었다.
오자마자 씻고 밥을 했다. 말 그대로 정말 밥이다. 오랜만에 냄비밥을 해보았는데, 기깔나게 잘 되었다. 볶음밥으로 어울리는 밥이지만 그냥 먹어도 너무 맛있어서 스스로 대견해했다. 볶음밥도 성공이었다. 다만 마늘과 양파 때문에 향이 좀 많이 났다. 이곳 마늘과 양파는 우리나라 것보다 매운맛도 강하고 향도 세다. 평소에 넣던 것만큼 넣고 적당히 익히면 맛이 강할 수밖에 없다. 냄새가 좀 덜 났으면 좋겠는데... 나한테서도 나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집 앞 식당에 와 있다. 와인을 직접 만드는 곳인 것 같다. 처음엔 클라라랑 타파스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맥주가 있냐고 물었더니 소믈리에가 이 지역 근처에서 만들어진 맥주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추천해준 것 중 부드러운 것으로 주문했다. 사장인지 모르겠지만 그 소믈리에는 매우 친절하게 맥주와 올리브를 갖다 주었다. 그분이 추천한 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가벼운 향인데 그냥 부드럽기만 한 건 아니다. 목 넘김이 부드러운데 맛은 묵직한... 그런 맛이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며 맥주가 정말 맛있다고 하니 그분이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 맥주가 어떻게 좋은지 천천히 설명하자(이분은 영어가 잘 안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 한다) "페르펙토" 하며 이탈리안 같은 손짓을 했다. 여기서도 많이 쓰나 보다. 절인 올리브는 이번에 처음 먹어보았다. 살짝 매콤하고 짭짤하니 맥주와 잘 어울린다. 안주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맥주병을 따고 나니 내 눈앞에는 감자칩과 토마토를 바른 빵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취하면 안 그래도 있던 식탐이 더 강해진다.
조용하고. 방금 들어온 아저씨가 무슨 와인을 주문하자 내 뒤에 잔뜩 있는 증류 기계 같은 것에서 한 잔을 뽑아다 줬다. 무슨 맛일까? 서로 다른 와인을 섞어서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 마셔보고 싶은데 오늘 돈을 많이 썼고, 이미 맥주를 마셨는데 같이 먹어도 될지 모르겠다(예전에 값싼 와인과 맥주를 같이 마셨다가 소량임에도 불구하고 필름이 끊긴 적 있음).
오늘 지로나에서 본 우체국에서 엽서를 보냈다.